이번 활동은 KIST란 어떤 장소인지 알아보고, 그곳에서 연구하고 계신 분의 강의를 통해 진로 탐색의 방향성을 찾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멘토님, 멘티들과 함께 KIST 직원분들의 안내를 통해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다. KIST의 설립배경 및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건물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담당자님이 부연설명을 해주셨다. 각종 정부출연연구기관이 KIST를 모태로 설립되었다는 것을 파악할 수가 있었는데, 중요한 점은 분화되어 나온 연구 분야들에 대해서도 KIST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화학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한국 생명공학연구원, 재료연구소, 극지연구소, 녹색기술센터 등 다양한 분야의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KIST를 모태로 파생되어 나온 것을 알 수 있었다. KIST의 설립허가증을 받기 위해 ' 박정희 대통령 ' 이 요청했던 공식 문서도 전시된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 건물 2층에, KIST에서 연구를 수행하면서 획기적인 발견을 하거나 수상을 하신 분들의 성함이 적혀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과학자 중에도 국가에 혁혁한 공을 세운 분들은 사후에 현충원에 안치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KIST가 이룬 과학적인 업적들을 알아보았다. 시기별로 정리되어 있던 것이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매우 다양한 연구 분야들에 영향을 미쳤던 것만은 확실하다. 리오 셀 섬유 개발, 초임계유체 이용기술 개발, 스마트람, 대시점 디스플레이, theragnosis(B- 아밀로이드를 이용한 초기치매 진단 단백질 연구) , 무전력 메모리 , 내시경 알약기술, 홍삼 등 추출기술 등 정말 다양한 원천기술 개발에 KIST가 미친 영향을 알아볼 수 있었다. 기술 중 '스마트람 2.0'에 대해 처음 들어보았다. 이 기술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이전에는 태양으로부터 식물이 빛을 받아 LED를 충전시키는 데에만 기술개발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요새는 식물을 사진으로 찍으면 생육 정도 및 다양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데까지 기술발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기술은 네덜란드가 선두적이라는 것과 미래에는 농업 분야에 대한 기술개발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대시점 디스플레이를 직접 체험해 보았는데, 한마디로 3D 안경을 쓰지 않은 채 눈에 착시효과를 주는 것이다. 이 디스플레이 영상은 휴대전화기나 카메라로 촬영했을 때에는 평면으로 보인다. 눈에 착시효과를 주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편광으로 빛을 막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화면이 울퉁불퉁하여 빛이 여러모로 퍼지는 것이다. 여기서는 후자의 방법을 사용하여 영상에 깊이가 있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영상을 좌우로 이동해서 보았을 때 화면 속 물체의 옆모습까지 관찰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후에는 KIST의 초창기를 이끄셨던 최형섭 박사님과 관련된 역사적 기록들이 있는 곳을 방문하였다. 이곳에서 그분의 연구자로서의 덕목과 삶을 엿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서, KIST에 종사하고 계신 박사님으로부터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과 관련한 간단한 세미나 강의를 들었다. 인공지능 관련 분야의 역사와 응용사례, 발전 방향 및 전망 등을 말씀해 주셨고 마지막에는 박사님 본인의 연구주제도 설명해주셨다. 인공지능이 최근에 나타난 학문이 아니라 1950년도에 'Alan Turing'을 시작으로 역사가 오래된 학문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그리고 2번의 암흑기를 거치면서 현재 일반인공지능 연구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AI 기초기술은 "지식구조+학습+추론+기계학습"을 연구하는 분야이고 AI 원천기술은 "음성/영상인식, 판단 및 계획, 자연어 처리" 등을 다룬다는 것을 세미나를 통해 배웠다. 박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AI 기초기술 연구의 필요성을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기는 상당히 어려워서, AI 원천기술 연구와 병행한다"고 설명해주셨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AI 분야는 원천기술 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진로선택과 연구자로서 살아가는 삶에 대해 우리 상담자들이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활동은 윤성희 멘토님의 멘토링 계획 중 기대하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KIST란 곳에 대해 처음 들어보기도 했고, 정부출연연구소를 방문해 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어서 더 설렜다. 첫 KICK off 모임이 있고 나서 약 한 달 만에 멘토님과 상담자들이 KIST가 있는 '상월곡역'에서 모였다. 다들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보았는데 표정들이 밝아 보였다. 멘토님도 바쁜 한 달여를 보냈다고 말씀하셨다. KIST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국가 중요시설"로서 군대처럼 방문자의 신원 및 목적을 확인하는 곳을 거쳐야 했다. KIST 내부는 매우 컸는데, 우리는 그 중의 아주 일부만을 둘러볼 수 있었다. 걸어가면서 멘토님께도 KIST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KIST가 설립되고 나서 중간에 KAIST가 분화되어 대전으로 떨어져 나갔는데, 그때 멘토님께서 직접 KAIST의 교수들을 설득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KIST에 석박사 과정이 생긴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모임이 오기 전에 KIST 홈페이지를 통해, 질문하고 싶은 내용도 준비하고 KIST라는 곳에 대해서도 대충 파악을 하고 갔었다. 그 중 '건국대'가 KIST와 협약을 맺은 대학이라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협약을 맺은 학교의 학생들은 KIST로 한 학기 정도 실험을 해 볼 수도 있고,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 석박사 과정을 신청할 수도 있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정부출연연구기관이기도 하니, 이쪽으로 대학원 진학을 고려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일정 내내, KIST 직원 한 분이 우리와 동행하시면서 부연설명을 해주셨다. 이과계통으로 대학을 졸업하시고서, KIST에서는 행정 관련 업무를 보심에도 과학 관련 지식이 상당하셔서 듣는 내내 놀랐다. 개인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안 좋게 생각하는데, 그 주된 이유가 '인권 탄압' 및 '독재' 때문이다. 그런데 KIST의 설립자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혹자는 베트남 파병의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KIST 설립을 약속받았다고 한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안 좋게 생각하고 있지만, 한 인물의 업적을 평가할 때 일부만을 볼 수 없다는 것은 깨닫게 되었다. 그의 과학자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KIST의 설립은 물론이고 넓게 보아서는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발전이 늦춰질 수도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다.
KIST의 설립배경 및 역사를 알아본 건물 2층에서는 과학기술에 미친 KIST의 영향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다양한 원천기술들을 KIST가 개발했는데, 나는 '개발한 원천기술을 계속 KIST가 보유하지 않고 왜 사기업으로 넘기는 것인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기관이 다양한 특허기술들을 보유하고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 기술이 넘어갈 일도 없을뿐더러) 담당자분께 질문을 하고 싶었는데, 입에서만 맴돌고 여쭈어보진 못했다. 여러 기술 중 기억에 남게 들었던 것이 자구벽 구조를 활용한 ' 무전력 메모리 ' 기술이다. 우리가 공대생들인 것을 고려해서 좀 더 자세한 부연설명을 해주셨는데, 용어들이 생소했다. 중요한 점은 기존의 메모리와는 구동 방식이 다르다는 것. 그 원리는 스핀조절을 통한 상온 작동 가변형 스핀논리소자 구형이다. 스핀 트랜지스터, 스핀 홀 전 기소자기술 개발 등 생소한 단어들을 접해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초대 설립자이신 최형섭 박사님의 생애와 연구자로서의 덕목 등을 살펴보았다. 그분의 학자로 사는 삶과 국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정말 본받고 싶었다. 여러 글귀가 적힌 종이들이 있었는데, 내가 선택한 글귀는 다음과 같다. " 연구자에게 창의적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끈기입니다, 노력을 이기는 재능은 없습니다. -연구자의 자질을 묻는 후배 과학자에게 조언하며..." 노력을 이기는 재능은 없다는 한마디가 굉장히 울림 있게 다가왔다. 견학을 통해 KIST라는 곳에 대해 알게 되었고, 과학분야 연구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했다.
양재 쪽에 있는 코트라 본사에 방문하여 코트라를 탐방하고 설명을 듣는 것이 오늘 모임의 계획이었다. 4시쯤 멘토님과 팀원들을 코트라 로비에서 모여 움직였다. 처음 보는 코트라 건물에 가슴이 뛰었고 설렜다. 내 꿈이 저기에 있구나! 이런 기분이었다. 먼저 코트라 안에 들어가 이곳저곳 보고 강의실에 들어가서 코트라라는 곳에 대해서 설명을 듣게 되었다. 솔직히 항상 대한무역협회라는 곳과 헷갈리는 경향이 있었고 자료들을 읽어도 애매할 때도 있어서 그분들이 하시는 일 하나하나 세세하게 듣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설명을 듣고 난 후에는 인사팀 과장님께서 오셔서 채용 설명 및 질문을 해주셨다.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졌지만, 코트라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회사생활 등에 대해서도 재치있게 설명해주셔서 분위기도 좋아졌고 재미있었다. 물론 코트라 채용에 대한 설명이 메인이었다. 설명을 통해서 기본적으로 인터넷에 제시되어있던 내용을 넘어서 면접이나 그분들이 어떤 인재상을 원하고 요즘 지원하시는 분들의 단점들에 대해서도 알려주셨다. 두 시간이 정말 짧게 느껴졌고 코트라에 대한 꿈이 커졌고 앞으로 어떤 것을 스스로 준비하고 연습해야 하는지에 대한 계획과 목표가 세워지는 듯했다. 이제 장기계획, 단기계획을 세워 꼼꼼히 준비해서 코트라에 도전할 것이다.
멘토링 전에 코트라라는 기관에 관해서 조사를 진행했고 채용과정이나 코트라에서 진행하는 인턴십을 조사하였다. 코트라를 방문하면 직접 그 안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만나고 이곳의 역할에 대해서 설명을 들을 텐데 기초적인 지식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시일 내에 지원 가능한 인턴십프로그램이나 몇 년 뒤 현실이 될 채용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궁금한 점에 대해서도 많이 여쭤보고 싶었다. 또한, 어떠한 측면에서 유리하고 현재 내가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인생에 관한 조언도 듣고 싶었기에 열심히 준비했다.
멘토님께서는 이곳에서 20년 정도 근무하셨다고 한다. 목표를 가지고 입사한 것이 아니라 얼떨결에 본 시험에 합격해서 입사하셨지만 다행이고 이곳이 멘토님의 성격과 어울려서 오랫동안 근무를 하실 수 있었다고 하셨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면서 틈나는 대로 세계를 보고 여행도 다닐 수 있었고 또한 우리나라의 도움이 되고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하셨다고 한다. 사실 한나라에 대사관보다 코트라 무역관이 더 먼저 그 나라에 입성하는 때도 많다고 한다. 즉, 이 기관은 우리나라의 국익에 큰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많은 것을 열정을 가지고 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그 이후에도 멘토님께서는 멘토님이 계셨던 남미 쪽에서의 경험, 사례 역할 등에서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서 코트라에 대해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사람들이 일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어렴풋한 것이 정확하게 된 것 같다. 멘토님의 말씀처럼 이러한 곳에 도전해서 일하고 싶고 뿌듯함을 느껴보고 싶다. 그리고 세계를 보는 눈을 가져 멘토님처럼 후학을 양성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멘토님뿐만 아니라 코트라를 방문했을 때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질문을 받아주셨던 분의 가르침도 적어보자면, 그분이 보실 때는 의미 없이 취업이라는 것에만 집중하는 청년들이 많다고 한다. 잘하는 사람, 화려한 사람은 많은데 내가 왜 이곳에 지원했고, 왜 잘할 수 있고, 어울리는지 이러한 기초적인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자격조건도 자격조건이지만 원초적인 자기 자신의 본질에 대한 질문 또한 갖춰져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100명이면 100명 다 답도 똑같고 모습도 비슷하고 하셨다. 자신의 개성을 찾고 그것이 빛을 내뿜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가르침을 주신 시간이었다.
코트라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 국제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 예를 들어 국제기구입사, 외교관, 다국적기업 등 다양한 방면으로 찾아보다가 알게 된 기관 중 하나였다. 생소한 기관이었지만 그 당시에도 코트라라는 기관에 매력을 느꼈고 검색을 통해 알아본 뒤 제 목표가 되고 꿈이 되었다. 그리고 대학교 수시전형 자기소개서를 써서 현재의 대학교 학과에 입학할 때 큰 비중을 차지했었다. 그 뒤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코트라라는 공기업이 경쟁률도 치열하고 거리가 먼 비현실 같아서 개인적으로 목표 순위 밖으로 밀려났었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항상 그림이나 상상으로 봤던 코트라 서울 본사 건물까지 가고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만나고 설명을 들으면서 간절해진 것 같았다. 나도 코트라에 입사하고 싶고 적어도 열심히 준비해서 도전해보고 싶었다. 아직 1학년이기에 졸업할 때까지는 그리고 많은 것을 경험하고 지식을 쌓을 시간이 남았다. 그래서 지금부터 하나하나 준비하고 멘토님과 인사과장님이 말씀해주신 나 자신을 찾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겠다. 4년 뒤 이 시간쯤 코트라에서 근무하고 싶다. 지금부터 시작인 것 같다. 자격증, 언어, 경제 논술 등 준비할 점은 많지만 하나도 지루하지 않고 즐거울 것 같아서 매우 기대된다.
미리 멘토님께서 정해주신 주제에 관한 독서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2개의 조로 나누었고 주제는 사전에 모두와 협의하여 '차별과 편견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로, 한 조는 '개인에게 있다'로, 다른 조는 '사회 구조적 모순에 있다'라는 처지로 토론하였습니다. 토론 시작 전에 근황에 관한 이야기와 앞으로 진행 일정에 대해 간략하게 논의하고 멘토님께서 앵무새 죽이기를 선정한 이유와 책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과 꽤 오래된 고전 소설임에도 현대의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은 것을 지적하시며 선량한 방관자의 문제도 제시하셨습니다. 또 '미래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한번 생각해보고 이러한 자기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멘토님의 설명과 인문학적 관점에 관한 이야기가 끝나고 토론은 2시간 정도 진행하였는데, 중간마다 토론이 더뎌질 때 멘토님이 질문을 하나씩 던지시며 원활한 진행을 도와주셨습니다. 토론이 끝난 뒤 원래 주차의 일정으로 기업 소개를 하려고 했지만, 멘토님께서 시의성을 고려하여 이번에 여행을 다녀온 제 여행기를 듣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셔서 제가 준비해온 여행기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행기 발표가 끝나고 앞으로 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상의하고 대략적인 일정과 프로그램 내용을 상의하고 단체 사진을 찍으며 7월 차 활동을 마무리했습니다.
우선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시간이 촉박하여 개인 발표인 여행기에 집중하느라 독서토론에 조금 소홀하였던 점이 아쉽습니다. 자신도 의견정리가 되지 않아서 주제에 맞춰 주장에 대한 논리적인 근거가 부족하여 토론에도 활발하게 참여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행기 발표는 여행의 풍경과 감성을 잘 보여주는 사진들을 여러 장 준비하여서 피피티 준비도 잘하였고 발표도 일화 위주로 얘기해서 흥미롭게 잘한 것이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독서토론 프로그램을 처음 진행해서 주제선정에도 미흡함이 있었고 진행도 조금 깔끔하지 못했던 점이 아쉽지만, 다음에는 이러한 점을 보완해서 팀보다는 개인 토론방식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제도 하나만 하기보다 여러 개를 선정해서 책을 다각도에서 보고 또 깊이 있게 토론하는 방식으로 하기로 협의하였습니다. 또, 토론에서 이번 주제는 저희 팀이 앞서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상대편도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많이 제시하셔서 자신도 생각이나 고정관념이 환기되었고 한 문제를 다방면으로 볼 수 있는 토론방식의 장점을 직접 느꼈습니다.
멘토님이 이야기하신 인문학적 사고에 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사회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부분이 있었는데 사회를 어떻게, 미래를 어떻게 볼지에 대해서, 또 그에 대한 대안도 스스로 생각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책에 대한 소개에서 선량한 방관자의 문제가 책에서 제시하는 사회문제가 아직 크게 개선되지 못하고 지속하고 있음에 이바지했다고 하시며 요즘 미국이나 유럽에서 보이는 자국 주의 정책에 대한 의견도 공유해보았습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저도 곧 사회인이 되는 처지에서 미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멘토링에서도 이 얘기가 나와서 이제는 그저 여론과 언론에 휩쓸리기보다 신념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돼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차별과 편견을 타파할 방안은 무엇이 있을지, 또 글로만 쓰고 혼자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를 표현하는 지식인이 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광화문에 자리한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의 위안부 전시회를 보았다. 40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지만 그 안에 담긴 역사와 사연들은 바다보다도 깊은 아픔이었다.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위안부 할머니들의 주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선명한 사진 두 개가 보였다. 첫 번째 사진의 할머니는 순박한 눈에 일자로 굳게 다문 입술이었다. 눈에는 자세히 보면 물기가 그득하여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나는 이 사진에서 슬픔을 읽어냈다. 두 번째 사진의 할머니는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패 누군가를 노려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이 사진에서는 분노를 읽어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가장 큰 두 감정이 느껴지는 사진들이었다. 일전에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알기 위해 집어 든, 책이었는데 나는 어딘가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책은 무조건 옳은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이 있었는데 나는 처음으로 책을 읽으면서 비판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책에서는 할머니들이 몇 년 동안 위안부였던 사실을 숨기고 살다가 갑자기 하나둘 밝힌 것이 무언가 석연찮다며 그 안에 보상 따위를 바라는 꿍꿍이가 있다거나 할머니들이 위안부 일을 일종의 자발적인 봉사 정신으로 참여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책의 저자는 우리나라 국적이었고 읽은 후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이미 소송까지 당하였고 많은 반발을 받고 있었다. 전시회를 보다 보니 그런 주장을 내놓았던 사람들이 더욱더 이해할 수 없었다. 돈을 벌 수 있다는 허언에 넘어가 낯선 타지에서 젊은 시절을 잡아먹히고 고향에 돌아와서도 결코 당신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떳떳하게 살지 못했던 가여운 삶들을 비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같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행동인가.
더불어 지식도 바로잡게 되었다. 종군위안부라는 단어가 자발적으로 군을 따라갔다는 의미로, 일본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려는 목적이 숨겨진 용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써서는 안 되는 용어이니 앞으로 어디 가서 언급하는 무지는 없어야겠다. 또 일본군 성 노예라는 표현을 써서 일본군의 조직적이고도 강제적인 동원 사실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는데 동시에 위안부 할머니들께는 매우 치욕적인 의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10억엔 정도를 받고 더 언급을 금하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체결했는데 가당치 않은 이야기이다. 이미 상당수가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억울함이 도대체 언제 풀릴 수 있을까. 전시된 위안소 사진과 영상들이 그 안타까움을 더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 한마디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까 싶었는데 멘토님께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곧 일본의 자존심인 천황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풀리지 않을 난제 중의 난제가 될 확률이 높다고 말씀해주셨다.
마지막으로 일본인 화가 도미 야마 다에 코의 '만주 괴뢰국', '일본군 위안부', '병사들을 배웅하며', '무속인의 기도'와 같은 작품들을 보았다. 일본 제국주의가 비극적 전쟁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생긴 피해자들에 대한 위로가 담겨있다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다. 전시회를 보면서도 그렇고 평소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은근한 반감을 품었는데 잘못을 인정하고 위로하는 일부 일본인도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게 되어 조금 의외이기도 했다. 사실 광화문에 이렇게 큰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있다는 사실도 멘토링 활동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고 언제 이 자리에서 사라질지 모를 위안부 전시회를 보게 되어 정말 뜻깊은 활동이었다.
위안부 전시회 관람을 마치고 식사로 친목을 다진 후 카페에서 의견을 나누었다. 멘토님께서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와 닿았던 부분이 많다. 위안부가 민감한 문제이다 보니 주변에서 반발을 많이 했다는데 멘토님께서 일단 해야지 뭐라도 된다는 생각으로 추진하셨다고 한다. 저번 활동에서 7기 수 팀원에게도 들었지만, 멘토님은 '해야 한다, 할 수 있다'라는 능동적인 신념을 지니신 분 같다. 정말 어떤 일이든 우선 시작이 중요한 것 같다. 안될 거야 라고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된다는 자신감으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완벽해지진 않더라도 행동을 개시하면 반이라도 가지 않을까! 또 전시회에서 하나의 진실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위안부에 대해서도 많은 의견이 있지만 어쨌든 진실은 하나이라고 설명해주셨다. 확 와 닿는 말이었다. 진실은 이념과 상관없는 것이다. 이념이 이러쿵저러쿵해도 어쨌든 홀로 우뚝 선 진실은 흔들리지 않는 진리이다. 그 말을 듣고 조금 상관없는 이야기기도 하지만 주변에서 나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도 나의 본질과 진심은 그대로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부정적인 생각이 들거나 반발에 부딪힐 때 나를 다잡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또한, 흥미로웠던 이야기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술이 발전한 곳이 전라도 곡창지대인데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인 '먹고 사는 것'이 보장이 될 때 부가적인 것, 즉 예술이 발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곡창지대니까 곡식이 풍족하고, 배가 부르니 그림이나 글을 짓는 것도 시도해보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도 빈부격차가 사회적 문제로 자리 잡고 있는데 서민들이 의식주 해결에 여유가 생겨야 문화적인 부분도 발전할 수 있다. 내가 장래 희망으로 삼고 있는 게임기획도 문화 방면인데 게임 산업이 발전하려면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을 알고 지지하는 데 관심을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오늘의 주제가 역사인 만큼 아픈 역사가 아픈 역사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재조명되고 세계 인권 보장과 평화에 이바지해야 치유된다고 말씀해주셨다. 위안부 문제도 늘 관심 가지고 격려해야 세계 공동의 여성 인권 향상에 이바지할 것이다. '위안부? 합의됐으니 끝난 거지 뭐가 더 이야기할 게 있어'라는 무식한 말로 넘기지 말고 다음 아고라 서명 같은 작은 일에도 동참하여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한몫해야 한다.
오늘은 또 7기 수 팀원 분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다음 활동인 문경새재에 대한 계획도 발표하는 자리였다. 문경새재 계획을 위해 8기 팀원들이 전원 사전모임을 가졌었는데 멘토님께 멘토링을 받는 것 외에도 팀원들과 아주 친해진 것 같아서 좋았다. 얻어가는 것이 많은 나의 정이 많은 팀, 파이팅.
우선 저번 시간에 인사를 나눈 멘티들과 또 한 번 반가운 만남을 가졌습니다. 저희는 코멘트룸에 앉아 조용히 자신에게 집중하며 버킷리스트 100가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처음엔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들'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적어 내려갔으나 멘토님이 3가지 그룹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하셨습니다. having(갖고 싶은 것), doing(하고 싶은 것), being(되고 싶은 것)으로 나누어 생각해볼 것을 권유하셨는데 그렇게 하니 좀 더 구체적으로 나의 버킷리스트를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다음 활동으로는 뇌를 쉬게 하며 진정한 몸과 마음의 안정을 가져보는 '센터링'을 배우고 직접 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눈을 감고 몸을 편안히 하는 것이 마치 명상과 비슷했는데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나의 뇌를 괴롭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새로운 경험이었고 저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센터링을 배우기 전 눈을 감고 자신의 머릿속에서 몇 가지의 문장이 떠오르는지 세어 보는 작업을 했는데 무려 1분에 13개의 문장이 떠오르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몸과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 상태로 멘토링 수업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조해리의 창'과 관련하여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내가 화가 날 때와 내가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항목을 적어 보았는데 화가 나는 이유와 존경하는 사람에 대한 이유 역시 나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서로에게 어울리는 직감적으로 떠오르는 키워드를 3가지만 골라 적어주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끝으로 삶의 의도 메트리스도 해보았습니다. 이렇게 멘토링 수업을 마친 후에는 멘토님과 멘티들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도 하고 앞으로 활동과 팀 이름에 대해 의논하는 자리도 가졌습니다.
잘했던 부분은 멘토님의 수업을 진심으로 듣고 많이 받아들인 점입니다. 멘토님이 말씀하시는 문장 하나하나가 제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느낍니다. 또한 아침마다 카톡방에 올려주시는 오늘의 말씀에 먼저 그리고 그 내용과 관련하여 대답하려고 노력한 점입니다. (매일 아침 가르침의 한 말씀을 올려주시는 멘토님이 참 대단하고 감사합니다).
'조해리의 창'에 대해 배울 때 멘토님께서 내가 존경하는 사람에 대한 이유가 사실은 내 안의 탁월성이라고 말씀해주셔서 매우 놀라웠습니다. 화가 나는 이유 역시 그런 부분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예를 들면 정의롭지 못한 사람을 볼 때 화가 난다고 썼는데 그것은 제가 정의로운 것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탁월성 때문에 화를 내고 좋아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까지 저에게 없는 면을 가지고 있기에 그 사람을 존경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놀랐습니다. 동시에 내 안에 어떤 잠재력이 숨어있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 말고도 버킷리스트나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키워드 들어보기, 삶의 의도 메트리스를 통해서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알고 그것을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팀에서 의견이 모아진 게 이번 멘토링을 통해서 나에 대해 알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거기에 적합한 수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나'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하고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이제까지는 그런 시간을 가져보지 못했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한 키워드를 주었을 때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중용'이란 단어가 3번이나 나오면서 나도 모르던 나의 모습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제 삶의 의도 메트리스에서 나온 문장 세 가지를 말씀드리자면 "나는 시간을 들여 건강한 몸을 만들 것이고, 직관에 따라 행동하여 성취감을 느낄 것이다."
"나는 선천적인 것들을 핑계로 삼지 않고 노력하여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건강한 몸을 만들고, 직관에 따라 행동하여 건강한 정신을 만들 것이다. (a sound mind in a sound body)"
이 세 가지 문장이 제 삶의 의도 메트리스에서 나온 문장들입니다.
다 적지 못한 버킷리스트를 적어보며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점점 더 늘려가고 싶습니다. 멘토님의 권유대로 8월에 있을 청소년 비젼스쿨에서 잘 이끌어가는 (또한 배우는) 경험을 할 것입니다. "코칭은 체험이다"라는 멘토님의 말씀을 실현할 기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