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리더육성멘토링사업에 참여하는 멘토의 삶과 성공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꿈을향해 도전하는 멘티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멘토링에 참여하시는 모든 분들께 배움과 성장의 좋은 토대가 되길 바랍니다.
진정한 기자가 되는 것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정의를 실현하고 세상에 진실을 알리는 것 이전에 정의를 실현할 세상과 진실을 가려야 할 사건을 정확하게 보는 ‘눈’을 만들어야 하죠. 기자가 되길 원하는 학생들이 정말 ‘진정한’ 기자가 됐으면 해요. 여기서 ‘진정한’ 이란 ‘관점’ 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무더운 날씨가 시작된 지난 6월, 동아일보 사옥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수묵 멘토.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진정한 기자가 되는 것’ 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한국장학재단에서 멘토로 활동하며, 아니 그 이전부터 마음에 담아온, 진정한 기자에 대한 그의 생각을 진심으로 이야기했죠. 잘 들어보세요. 여러분의 꿈이 무엇이든 이 이야기를 마음에 담고 간다면 분명 어느 길에나 통할 테니까요.
시대를 기록하려면, 시대를 잘 봐야
동아일보에서 기자로서 약 30년을 활동해 온 최수묵 멘토. 한 직업에서 10년도, 20년도 아닌, 30년 이상 활동한 사람에게 우리는 어떤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까요. 사회부와 경제부, 국제부 등 다양한 부서에서 세상의 구석구석을 취재한 최수묵 멘토는 약 8년 전부터 한국장학재단과 인연을 맺고 차세대리더육성멘토링에서 멘토로 활동했습니다.
“매년 6~8명의 친구들과 만남을 가졌으니, 지금까지 저를 거쳐 간 학생들만 약 40여 명 정도 되겠네요. 최근에도 그 친구들과는 가끔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졸업하고 취업한 친구들도 꽤 돼요. 이제 제자가 아니라 후배가 된 거죠. (잠시 생각하다가) 시간이 벌써 이만큼 흘렀어요. 세월 참 빨라요. 그렇죠? (웃음)”
최수묵 멘토는 ‘진정한 기자가 되자’ 라는 주제로 멘토링을 진행합니다. ‘기자가 되자’ 라는 주제라고 해서 그저 언론고시를 통과하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이 강의의 방점은 ‘기자가 되는 것’ 보다 ‘진정한 기자가 되는 것’에 찍혀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이 아닌 근본을 공유한다는 의미죠.
“가장 먼저 이 사회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고민부터 시작합니다. 기자의 개념부터 바로 잡아주려고 하죠. 이후 우리가 무엇을 갖춰야 진정한 기자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해 질문을 건네요. 결국은 근본에 대한 학습과 공부가 진정한 기자로 거듭나게 한다는 걸 이야기하죠.”
근본에 대한 학습과 공부. 여러분은 무엇이 근본이라고 생각하세요? 최수묵 멘토는 ‘시간’과 ‘공간’이 바로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관점을 형성하는 것들은 씨줄과 날줄처럼 시간과 공간이 적절히 엮여 만들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관점이라는 것은, ‘좌-우’를 넘어 우리 역사를 종합적으로 볼 줄 아는 능력입니다. 씨줄이 시간이라면, 날줄은 공간이에요. 시간이란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아우르는 시간의 축이죠. 과거를 이해해야 현재의 우리를 이해할 수 있고, 그래야 미래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알게 되는 만큼 학생들은 올바른 역사적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역사에 대해 배워야 하는 이유에요. 공간은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공간, 시각을 넓혀 왼쪽으로는 유럽 오른쪽으로는 미국, 좀 더 가까운 시점에서는 중국과 일본에 대한 이해입니다. 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종교와 사상이 다르기 때문에 지구상의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문화권의 존재들로 존재합니다. 그 문화와 철학, 사상을 익히는 게 중요해요. 역사와 공간에 대한 공부죠.”
철학부터 역사까지… 폭넓은 시선을 향해
근본에 대한 시선을 갖추기 위해, 최수묵 멘토의 멘티들은 철학부터 역사까지 다양한 공부를 ‘해야만’ 합니다. 최수묵 멘토에 따르면 멘토링이 있는 날을 위해 각 학생들이 학습하는 공부의 양이 어마어마하다고 하네요.
“팀 단위로 과제를 줍니다. 두 명, 혹은 세 명씩 조를 짜서 함께 책을 읽도록 해요. 과제로 내 주는 책들이 결코 쉬운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 혼자 읽기는 힘들어요. 2주마다 만나는 만큼, 그 사이 동안 학생들은 책 한 권과 씨름을 하는 거죠.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읽을 때는 힘들지만 매우 보람된다고 하더라고요. 학교에서도 추천받지 못했던 책들을, 이곳에서 알고 읽고 토론을 하다 보니 얻는 게 많다고 했어요. 그 때 저도 새삼 느꼈죠. 젊은 학생들의 지적 욕구가 상당하구나. 그 욕구를 살려줄 프로그램들이 국내에 많이 부족하구나, 하고요.”
궁금했습니다. 어떤 책을 과제로 내주는지 말이죠. 여러분 잘 들으세요. 우리 모두의 지적 호기심이 자극 받을 시간입니다.
“먼저 프랑스 생물학자가 쓴 과학철학에 대한 책 <우연과 필연>을 추천합니다. 많은 학생들이 ‘과학’을 그저 기계적이고 기술적인 것, 동시에 수학이자 논리라고만 생각하는데 사실 과학은 철학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과거 그리스 철학자들은 모두 과학자이기도 했잖아요. 철학적 사고가 바탕이 돼야 결국 과학적 사고도 할 수 있는 거죠. 또 다른 책으로는 <도덕의 정치>를 추천합니다. 조지 레이커프라는 미국의 인지과학자가 저술한 책인데 단어가 갖는 인지과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갖는 단어의 편견을 언급한다고나 할까요.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보지 않도록, 우리도 모르게 갖고 있던 고정관념과 편견을 짚어주고 있죠.”
한 권의 책이 더 남았습니다. 진보 역사학자인 박태균 씨의 <한국 전쟁>이라는 책입니다. 최수묵 멘토는 이 책을 통해 우리의 땅은 왜 분단이 돼야만 했는지, 그 시작은 어디서부터인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역사의 상처를 봉합하기 위해서는 ‘좌’ 혹은 ‘우’ 라는 이념적 대결이 아닌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면서, 이 책이 그 이해를 제공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했죠.
“기자는 사회적 의사입니다. 역사의 병폐를 봉합할 수 있도록 사회적 여론을 만드는 사람이죠. 의사라면 공부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 잘못된 치료를 하면 안 되잖아요. 이를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보다 현명한 관점과 시선이 필요합니다. 그 시선을 갖추기 위해 계속해서 공부하는 것이고요.”
못 볼 순 있어도, 안 봐선 안 된다
기자가 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사실 그 중 대부분이 기자에 대해 오해를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일종의 ‘환상’ 인 셈이죠. 제 4의 권력으로 불리는 언론. 그것에 대한 환상이 학생들로 하여금 기자의 실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는 게 최수묵 멘토의 이야기였습니다.
“멘토링 프로그램으로 학생들 면접을 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기자는 멋있다’ 라고 말해요. 뭐가 멌있냐, 라고 물으면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일하잖아요’ 라고 답하죠.(웃음) 그러면 저도 바로 대답해줍니다. 그런 일 없다고요. 갑과 을의 논리로 말하자면 기자는 오히려 을에 가까워요. 인터뷰이가 허락을 해줘야만 인터뷰를 할 수 있는데, 이 직업이 어떻게 갑의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렇다면 최수묵 멘토는 어떻게 기자의 길로 들어서게 됐을까요. 이 질문은 그의 30년도 더 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자는 제안인 셈입니다. 질문을 받은 최수묵 멘토는 이내 멋쩍은 웃음을 보이더니 “그냥 운이 좋게 됐다” 라고 머쓱하게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뭐가 중하냐, 라는 의미로 들리는 웃음이었습니다.
“지금은 취업난이 상당하지만 제 때는 그렇지 않았어요. 물론 그 때도 경쟁률이 높았지만, 사실 경쟁률은 예나 지금이나 큰 의미를 둘 건 아니죠. 합격한 사람에게 경쟁률은 언제나 1:1이고, 불합격한 사람에게 250:1인 거니까요. 제가 기자가 된 건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의 영향이 컸습니다. 당시 제게 ‘너만큼 국사를 잘 이해하는 아이는 처음”이라고 하셨어요. 그 말이 제 안에 씨앗으로 심겨졌던 거죠. 군대 마치고 진로를 고민할 때 선생님께서 해 주신 이야기가 생각나더라고요. 역사와 관련된 일이 언론이라고 생각해 기자가 되기로 마음먹었죠.”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그에게는 ‘기자의 역할’을 근본에서부터 생각하게 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아직 새내기 기자일 때였습니다. 새벽 도로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전복돼 운전자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는데 마주 오는 차와 충돌한,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되고 있었습니다. 헌데 그가 직접 현장에 가 보니 도로 위 튀언온 맨홀 뚜껑에 부딪혀 일어난 사고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본래 맨홀 뚜껑은 살짝 튀어 나오게 설치합니다. 자동차가 그 위로 다니면서 뚜껑이 땅 안으로 들어가 평평해지거든요. 헌데 현장에 가 보니 이 사고가 도로 위로 튀어나온 맨홀 뚜껑 때문에 발생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단순 교통사고가 아닌 거죠. 실제로 오토바이와 충돌한 것으로 알려진 자동차의 운전자도 ‘오토바이가 갑자기 위로 튕겼다’ 라고 진술한 바 있었고, 오토바이 앞쪽이 찌그져 있었거든요. 단순 교통사고가 아닌 맨홀뚜껑 때문에 일어난 사고, 라는 제 기사가 사회면 톱으로 보도됐고 이후 시간이 흘러 2년이 지났습니다. 어느 날 신문사로 전화가 왔어요. 돌아가신 오토바이 운전자의 아내분이셨어요. 저를 찾으며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죠. 왜냐고 물으니, 사고 이후 서울시와 소송이 붙었는데 대법원까지 가서 결국 승소를 했다더라고요. 그 결정적 계기가 제 보도였다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고 하셨죠. 그 전화를 받고 보니 기분이 이상했어요. 거대담론을 쓰는 것 만이 의미있는 게 아니구나. 남들이 스쳐지나가는 작은 일도 자세히 보고, 그것을 제대로 쓰는 게 기자구나, 싶었어요. 그 때부터 제 철학이 완전히 바뀌었죠. 학생들에게 ‘진정한 기자’ 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타인을 그져 스쳐지나가지 않을 것을 권한 최수묵 멘토. 그는 “못 보아서 지나갈 수 있고, 못 본척 하며 지나갈 수 있다. 하지만 둘은 다르다. 못 보는 것은 교육으로 해결되지만 ‘못 본 척’은 고칠 수가 없다. 타인을 못 본 척 한 사람이 많아질수록 이는 우리 사회가 각박하다는 증거”라며 “기자가 되길 워하는 친구들은 타인에 대해 먼저 관심을 두기 바란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청경우독(晴耕雨讀). 하늘이 맑은 날에는 밖으로 나가 논을 갈고, 비가 올 때는 책을 읽으라는 고사성어입니다. 최수묵 멘토는 이 말을 마음에 두고, 매일을 살아갑니다. 살다보면 내 손에 권세가 쥐어질 때도 있고 그 칼자루가 타인에게 넘어갈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지나간 권력과 시절에 집착하지 말고 조용히 자신과 마주보라는 의미인 셈이죠.
“작은 일에 일희일비 하지 말고, 그저 의연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부단히 수행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20년 후에는 학생들이 또 다른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주면 좋겠어요. 그래야 우리 사회가 계속 선순환되고, 따뜻해질 수 있으니까요.”
최수묵 멘토
학력 |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 졸업 석사
경력 |
현. 동아일보 미디어연구소 기획위원
전. 동아일보 편집국 콘텐츠기획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