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두바이, 이탈리아, 뉴질랜드, 남아공에 이르기까지
지난 33년간 외교 현장 곳곳을 발로 뛰며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는 데 앞장서 온 오윤영 멘토.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지위와 대우를 보장받고
안전하고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지금의 환경은 이역만리 머나먼 타국,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늘도 헌신하는 외교관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걸어온 삶의 발자취에는 어떤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겨있을까요?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다
조용한 공항 속, 홀로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보는 한 청년이 있습니다. 푸른 창공을 가르는 비행기를 보며 청년은 생각에 잠깁니다. 그의 눈빛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천하에 알리겠다는 열망이 가득 서려있습니다. 이윽고 청년은 드넓은 세상을 향해 힘찬 발을 내딛습니다.
해외 출국의 기회도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았던 시절, 오랜 시간 간직해왔던 소중한 꿈이 오윤영 멘토의 눈앞에 현실이 되어 펼쳐졌습니다.
“처음부터 외교부 입사를 목표한 건 아니었어요. 우연한 계기가 있었지요. 공과대학 졸업 후 외국계 컴퓨터 회사에 시스템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중, 운 좋게 미국 출장의 기회를 얻었어요. 당시는 해외 출국도 흔치 않던 시절이었는데 처음 다른 나라를 가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든 생각이, ‘나는 해외 여러 나라를 마음껏 다니며 자유롭게 살아야겠다’라는 거였어요. 어떻게 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알아보니 외무부 직원이 되면 된다더군요. 그렇게 시작한 외교관 인생이 30년을 훌쩍 넘었습니다.”
머나먼 여정 끝에 다다른 곳은 예멘. 대사관이 위치한 수도 sana’a는 해발 2,400m에 달하는 고지대로 숨쉬기조차 버거웠고,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사무실에는 책상 하나 없이 황량함만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첫 재외공관으로 부임한 주예멘대한민국대사관이 하필이면 이제 막 개설된 신설 공관이었던 것이지요. 이때 그가 마주한 현장의 어려움은 오히려 배움의 기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태평양의 어느 섬나라를 가도 있다는 3가지가 없더군요. 골프장, 중국 음식점, 맥도날드 매장입니다. 처음에는 정말 막막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제가 겪은 모든 어려움이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되어 돌아왔어요. 영어가 통용되지 않아 힘들었던 시기는 아랍어를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이질적인 문화에 불편함을 느꼈던 순간들은 이슬람 사회를 깊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지요. 나중에는 이곳에 적응하고 애정을 가지게 되어 1년 근무 연장을 신청하기까지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제가 겪은 모든 어려움이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되어 돌아왔어요.
오윤영 멘토의 Mentoring Point ①
- 지금의 어려움도 결국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되어 돌아온다
초심의 마음으로, 늘 발로 뛰는 외교관
모진 환경 속에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상황. 익숙한 것 하나 없던 ‘초보 외교관’이었기에 더 부지런히 뛰고 더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제, 문화, 홍보, 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를 조금씩 아우르는 전문가가 되어야 했고, 현지 행사라도 있는 날에는 저녁과 휴일까지 반납하며 업무에 매진해야 했지요. 하지만 그때마다 오윤영 멘토의 마음을 채운 것은 고단함보다는 즐거움이었습니다. 지난 33년의 세월 동안 변함없이 처음의 마음을 간직하며 묵묵히 주어진 길을 걸어온 덕분에, 그를 아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는 ‘발로 뛰는 외교관’으로 남아 있습니다.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와 휴일이 다른 곳들이 있어요. 특히 중동의 많은 나라들이 목요일과 금요일에 쉬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한국은 근무일이잖아요. (웃음) 그럼 저희는 반나절이라도 공관에 출근해서 업무를 보게 돼요. 반대로 토요일과 일요일은 한국의 휴일인데 이때 현지에서 급한 일이라도 생기면 본부와의 연락이 어려워 곤란했던 적도 있었고요. 지나고 보니 모든 게 다 추억이네요.”
대한민국의 희로애락을 먼발치에서부터 지켜봐 온 그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위상과 국격을 바라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전 세계가 K-POP에 열광하며 한글을 배우고, 어느 나라를 가도 어렵지 않게 한국식당을 찾을 수 있는 지금의 모습은 과거 몇 년 전만 해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고요. 하지만 오윤영 멘토는 이 모든 결과의 과정마다 결코 우연은 없었다고 말합니다.
“다이내믹 코리아로 대변되는 한국인의 결집문화가 발휘될 때마다 참으로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함께 잘 살아보자’며 열심히 달려온 새마을 운동이 그러했고, 위대한 승리를 위해 거리를 가득 메운 붉은 악마의 응원이 그러했고요. 그런데 요즘 들어 이런 우리나라를 스스로 ‘헬조선’이라 부르며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사회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더 따뜻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청년들이 한국 사회에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스스로 자존감을 높일 수 있고, 그 자존감을 바탕으로 본인의 능력을 제대로 키울 수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 사회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더 따뜻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오윤영 멘토의 Mentoring Point ②
- 언제나 긍정과 희망의 시선으로 현재를 바라본다
나를 단단하게 만든 인생의 순간들
파란만장했던 청춘의 시기를 지나 하나둘 피어오른 눈가의 주름에는 오윤영 멘토가 걸어온 지난날의 무수한 세월이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안타까운 역사의 한 장면을 직접 마주하기도 하였고, 머나먼 이국땅에서 맞이한 생명의 마지막을 겸허히 돌보는 순간도 있었다고요.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어요. 외교부 일로 동료들과 함께 미국 워싱턴으로 출장을 간 적이 있는데, 당시 숙소를 미국 국방성 펜타곤 바로 길 건너편 호텔에 잡았거든요. 업무가 많아 공관에서 밤을 꼬박 새우고 아침이 밝아서야 숙소로 이동해서 바로 곯아떨어졌는데 두어 시간 지났을까, 갑자기 천지가 요동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깜짝 놀라 나가보니 펜타곤 건물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소방차, 구급차, 헬기까지 아수라장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날이 바로 2001년 9월 11일이었습니다.”
삶의 여정마다 예기치 못한 순간도 많았지만, 그런 경험이 모이고 모여 그를 더 단단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주뉴질랜드대사관에 부임한 지 3년 되었을 무렵, 한국에서 사채 빚에 시달리던 한 여성이 도피 생활을 하다가 평생 가보고 싶어 했던 뉴질랜드에서 삶을 마감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어요. 대한민국 영사로서 저도 현장으로 이동하여 고인의 장례식 준비를 돕게 되었죠. 며칠 후 유가족이 도착했고, 장례를 치르려 하는데 그 장례식장은 설립자의 유지에 따라 화장 전 종교적인 추모를 꼭 해야만 한다고 하더군요. 상황이 여의치 않아 고민하다가 제가 잠깐 목사가 되어 추모식을 이끌기로 했습니다. 평소 가지고 다니던 성경책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죠. 짧은 시간이었지만 타인의 마지막을 돌보며 인생의 겸허함과 숭고함에 대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타인의 마지막을 돌보며
인생의 겸허함과 숭고함에 대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윤영 멘토의 Mentoring Point ③
- 예기치 못한 삶의 경험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통섭과 융합의 힘으로 미래 대한민국의 주역이 되기를
이제는 사회리더 대학생 멘토링의 멘토로서 그가 살아온 인생의 경험과 지혜를 전하고 있는 오윤영 멘토. 그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100년을 이끌어 갈 미래의 주역들에게 항상 헌신과 나눔의 자세를 가질 것을 강조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우리 사회가 꼭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절대적인 평등을 구현하기는 어렵고, 불가피한 격차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기득권층은 적어도 그들이 누리는 특권에 걸맞은 품격으로 행동하고 때로는 헌신할 수 있어야 해요. 저의 멘티들에게도 그런 가치를 심어주기 위해 매년 봉사형 활동의 일환으로 멘티들과 함께 헌혈과 헌혈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어요.”
유례없는 전염병의 확산, 인공지능에 따른 일자리 감소 그리고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까지. 격변하는 시대 속에 어려움을 마주하고 있는 오늘의 청년들에게 오윤영 멘토는 통섭과 융합의 힘으로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생존하고 헤쳐나가는 힘을 기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전공을 뛰어넘는, 모든 학문을 아우르는 통섭과 융합의 능력을 키우시길 바랍니다. 청년 멘티들이 자신의 능력을 글로벌 무대에서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게 저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사명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세계 속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어갈 미래의 소중한 주역이니까요.”
인생의 제2막, 사회리더 대학생 멘토링을 통해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갈까요? 새로운 도전으로 가득 채워질 그의 내일을 응원해봅니다.
자신의 전공을 뛰어넘는, 모든 학문을 아우르는
통섭과 융합의 능력을 키우시길 바랍니다.
오윤영 멘토의 Mentoring Point ④
- 통섭과 융합의 자세로 시대의 변화에 대비한다
학력
- 경희대학교 전자공학과 학사
경력
- 前 주프랑크루프트총영사관 부총영사
- 前 주두바이총영사관 차석 영사
- 前 주이탈리아대사관 1등서기관
- 前 주뉴질랜드대사관 2등서기관
- 前 주남아공대사관 3등서기관
- 前 주예맨대사관 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