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복 멘토에게 ‘올봄’은 어느 해보다 낯설고 새롭습니다. 38년간 유한킴벌리와 함께한 긴 여정에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사회리더 대학생 멘토링의 새로운 문을 두드린 최규복 멘토를 만나봤습니다.
신입사원에서 대표이사까지... ‘꾸준함의 힘’이 이끌어온 시간
1983년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2020년 대표이사로 은퇴하기까지, 최규복 멘토는 인생의 오랜 시간을 유한킴벌리와 함께해 왔습니다. 눈을 감았다 뜨는 짧은 순간에도 많은 것이 변하는 ‘속도의 시대’에서 사십여 년 가까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그의 한결같은 행보는 오히려 눈에 띕니다.
“유한킴벌리가 첫 직장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전에 공기업에 3년 정도 다녔었어요. 그러다가 마케팅을 하고 싶어 유한킴벌리에 지원하게 되었죠. 처음 들어갔을 때는 정신이 없었어요. 똑똑한 사람들도 많았고, 공부해야 할 것도 많았죠. 공기업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 적응하느라 힘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밤낮없이 일만 했으니까요.”
최규복 멘토가 안정적인 공기업을 나와 당시 본사인원이 100명이 되지 않았던 작은 규모의 유한킴벌리에 입사한 것은 큰 도전이었습니다. 비교적 변화가 크지 않은 공기업과 달리, 끝없이 변화해야 하는 시장의 상황에 맞춰 배우고 또 배우며 발맞춰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열심히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보완하며 버티었지요.
“나쁠 때가 있으면 좋은 때도 있습니다. 제가 늘 마음에 간직해 온 말이 있는데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겁니다. 역사 속 영웅, 그리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분들의 삶을 살펴보면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꾸준한 노력이 쌓여 결과를 만들어 냈어요. 그 ‘꾸준함’에 주목했으면 좋겠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잘 버티다가 좋은 기회가 왔을 때 발 빠르게 잡는 것이 꼭 필요해요.
요즘 젊은 세대가 매우 힘듭니다. 제 청년 시절과 다르게 취업이 어렵고, 사회 문제에서 오는 좌절감이 있어요. 하지만 청년들이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쁜 시절을 돌파해 나가면 분명 좋은 때가 옵니다. 그 시간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꾸준함과 인내, 버티는 힘. 최규복 대표는 스스로 이 시간을 증명해 왔습니다. 사원에서 대표로, 그리고 10여 년간 장수 경영인으로 불리기까지 그가 만들어 낸 결과에는 늘 ‘꾸준함’이 함께했지요. 결과만 보면 마치 시작부터 모든 일이 순탄했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는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어릴 때부터 주경야독하며 청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제한된 환경으로 학창 시절의 낭만을 풍부하게 경험하지 못한 것은 여전히 아쉽지만, 그만큼 큰 삶의 교훈을 얻었습니다.
“좋은 환경이면 더 좋았겠죠. 그렇지만 어렵고 불리한 환경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오히려 어려운 환경이 더 열심히 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걸 경험했어요. 과거의 저와 같이 어려운 시간을 겪고 있는 청년들이 있다면 꼭 포기하지 말고 지속해서 노력을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인생의 전환점, 청년들이 ‘함께’ 만들어낸 긍정적인 에너지
사원으로 입사해 대표이사까지 꾸준함으로 성공한 최규복 멘토의 이야기는 늘 입사와 함께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도 입사하기 전에는 지금의 멘티들과 같은 청년이었죠. 특별한 수식어가 필요 없을 만큼 무궁한 가능성으로 빛나는 청춘, 최규복 멘토의 삶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언제였을지 궁금했습니다.
“10대에서 20대 중반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 시작했던 동아리였습니다. 동아리 활동 중 하나였던 농촌 봉사활동은 제 인생에 긍정적인 전환점을 만들어주었어요. 6박 7일간의 농촌 봉사활동을 기획하고, 마을 주민들과 작업 계획을 세우고, 스무 명 남짓 되는 고등학생들이 삽과 곡괭이로 손수 고된 작업을 하여 마을 길을 확장해주는 경험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뭔가를 기획하고 실행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만들어낸 순간의 경험은 굉장히 강렬했지요. 이를 계기로 좋은 영향을 만들어내는 기쁨을 알게 되었어요.”
고등학교 시절 동아리 활동을 통해 선후배들과 함께 만든 ‘무언가 해내는 긍정적 경험’은 이후 그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선한 영향력을 이끌어가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죠.
이 경험은 유한킴벌리 입사 후에도 이어져, 어려운 순간마다 힘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시작해 경영인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 시간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계기가 무엇인지 묻자 그는 주저 없이 대답했습니다. “특별한 계기보다도 ‘함께했던 사람’들이 저를 지탱해주었습니다. 어려운 위기의 순간마다 훌륭하신 선배님, 좋은 동료, 그리고 후배들을 만나 지원받은 덕에 오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어요. 직장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일에 책임을 다해야 하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성과를 내기는 어렵습니다. 선배와 후배, 그리고 동료들이 함께해주었기에 힘든 시간도 버텨낼 수 있었고, 또 좋은 성과도 낼 수 있었던 것이지요.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케터에서 대표이사까지, ‘위기’의 순간을 돌파하는 방법
최규복 멘토를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지금의 유한킴벌리를 있게 한 브랜드 ‘하기스’입니다. 신입사원 시절에 최규복 멘토가 마케터로서 처음 한국 시장에 출품한 브랜드는 이제 국내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하기스는 저에게는 마치 자식과도 같은 존재죠. 오랜 세월 어려운 시간과 좋은 시간을 함께 겪었어요.” 브랜드를 세상에 내놓았던 초창기에는 소비자와 시장의 인식이 전무한 상황이었기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사회문화의 변화를 보면서 브랜드의 미래 가능성에 대해 확신했기에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성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시장 규모가 커지고 경쟁이 과열되면서 다시 위기의 순간이 오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최규복 멘토는 집요하게 고민하여 돌파구를 찾아 나섰습니다. ‘우리나라 소비자에게 맞는 제품은 뭘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였고, 이런 끈기 덕에 제품은 점점 국내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더니 수출로 이어졌습니다.
위기는 기업을 이끄는 대표이사의 자리에 있을 때도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최규복 멘토는 당황하기보다는 마케터 시절처럼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까’ 집요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위기는 예방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하지만 모든 조직은 위기를 만납니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조직의 성패가 달려있습니다. 위기를 극복하면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고객 중심으로 의사소통하고 문제를 풀어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내딛는, 낡지 않은 발걸음
삶의 오랜 시간을 몸담았던 조직에서 마케터와 경영자로서의 역동적인 활약을 마무리하고, 인생의 새로운 장을 향해 발을 내디딘 최규복 멘토. 퇴임 후 그가 첫걸음을 한 곳이 바로 한국장학재단의 사회리더 대학생 멘토링입니다.
“인생의 많은 시간을 오롯이 회사에 몸담았습니다. 퇴임을 결정하고 말로는 쉽게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었죠. 참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저와 우리 가족, 그리고 회사를 위해 살아왔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이제 제가 하는 일의 시작은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이어야 한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러던 중에 장학재단의 멘토링 프로그램을 추천받았습니다. 사회리더 대학생 멘토링을 통해 제가 가진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 젊은 세대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주고 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의 익숙하고 당연한 환경에서 벗어난 최규복 멘토의 모습은 편안해 보였습니다. 회사에서는 베테랑이었지만 멘토로서는 초보라며 환하게 지은 미소에서 멘토로서의 여정이 시작된 것에 대한 기대감이 느껴지기도 했답니다.
“제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통해 젊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지만, 동시에 젊은 세대를 직접 만나 배울 수 있다는 기대도 있어요. 밀레니얼 세대와 이렇게 가까이 만나 겪을 기회가 얼마나 있겠어요. 젊은 세대로부터 그들의 시각을 배우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디에서나 ‘배울 것’을 먼저 찾는 최규복 멘토의 모습에서는 노련함을 무기로 청년들의 경험 없음을 얕잡아 보는 ‘낡은’ 어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인 청년 멘티들의 생각을 듣고, 그들의 문화를 알고 싶은 설렘이 더 커 보였지요.
또렷하고 맑은 눈으로 새롭게 시작될 오늘에 대한 기대를 품은 채 ‘낡지 않은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는 최규복 멘토의 내일을 응원하며, 사무엘 울만의 ‘청춘’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중략)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 사무엘 울만, <청춘> 중 발췌-
학력
- 연세대학교 대학원 마케팅학, 국제경영학 석사
- 숭실대학교 경영학 학사
경력
- 전)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사장
- 전) 가족친화포럼 공동대표
- 전) 한국마케터협회 회장